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에 유력한 자가 친족으로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땅에 떨어진 이삭줍는 일은 밭주인이 호의를 보여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모압여인이었던 룻에게 누가 호의를 보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룻의 발걸음을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으로 이끄시고 또한 보아스의
발걸음도 룻이 있는 그 밭으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복주시기 위함입니다”(4). 이처럼 오늘도 우리는 분명히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시고 그 삶을 인도하시며 복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우리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하루를 삽시다.
지난 본문에서 우리는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나오미의 불신앙적 발걸음과 룻의
신앙적 결심의 발걸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부터 이러한 나오미와 룻은 빵의 집 베들레헴에서 어떻게 될 것인지 본문을
보여줍니다. 가장 먼저 오늘 본문은 룻의 모습을 먼저 보여줍니다. 믿음의 결심을 따라 베들레헴에 도착한 모압여인 룻의 삶은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먹을 것을 위해 누군가의 밭으로 가서 바닥에 떨어진, 즉 버려지는 이삭을 주워 먹을 것을 얻는 가장 가난하고 힘든 삶의 모습입니다. 더구나 이렇게 추수하는 남의 밭에 가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은 무엇보다 밭주인이나
주인을 대리하는 일꾼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에서 하루먹을 것을 줍기 위해
밭으로 나가면서 룻은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는다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습니다”(2)라고 나오미에게 말합니다.
여기에서 “은혜”로 번역된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하는 일반적인 히브리어
“헤세드”와는 다른 “호의”를 의미하는 “헨”이라는 단어입니다. 즉 이러한 룻의 말 속에는 특별히 모압여인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호의를 얻지 못하는 처지를 드러냅니다.
이것은 6절에서 언급된 “모압여인”이라는 표현 속에서 드러나는 멸시의 뉘앙스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압여인으로써 호의를 받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룻의 걱정과 달리, 본문 3절에서는 룻이 마치 곧장 호의를
얻어 밭에서 이삭줍는 일을 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즉 3절은 룻이 베는 일을 하는 일꾼들을 따라 도착한 밭에서 이삭을 줍기 시작하는데, “우연히” 그 밭이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이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번역으로는 “우연히”로 번역되었는데, 이 단어는 “일어난 일”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독일어 번역은 “es begab sich eben, dass…”로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 일이 나오미나 룻이나 다른 어떤 누구도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어지는 4절이 곧장 받아서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으로부터 왔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도 우리 번역의 “마침”이라는 단어를 독이어는 eben으로 번역하여 보아스가 베들레헴으로부터 와서 룻이 이삭을 줍는 바로 그 밭에 온 것이 보아스나 다른 어떤 누구도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였던 E.H. Carr가“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고 말한 것처럼,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우연과 우연이 만나 필연적으로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숨어계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즉 비록 하나님이 표면적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나거나 행하시지는 않으시지만, 하나님은 룻의 발걸음을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으로 이끄시고 또한 보아스의 발걸음도
룻이 있는 그 밭으로 이끄셨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앞서 살핀 것처럼 룻의 믿음의 결단과 더불어 4절에서 드러난 것처럼, 보아스와 그의 일꾼들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믿음의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밭에 도착한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이라고 인사를 건네고, 일꾼들은 보아스에게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주시기를”이라고 응답합니다(4). 주인인 보아스와 그의 일꾼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 자연스러운 인사말은 그들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즉 이 인사말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이들은 복된 자들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룻기서 1장을 통해 나오미의 불신앙적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나오미의 불신앙적 모습은 여호와께서
자신을 주시하시고 괴롭히시고 치셨다(1:20,21)는 나오미의 말로 드러납니다. 즉 1장에서의 나오미에게 있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복이 아니라 괴로움이며 징벌입니다. 그러한 생각 속에서 나오미와
그 가족은 하나님의 땅 베들레헴을 떠나 이방신들의 땅인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2장에서 보아스와 그의 일꾼들은 흉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땅 베들레헴에 계속 머문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복임을 믿음으로 받고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믿음의 모습은 1장에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다” “내가 결코 그 땅(하나님의 땅)을 떠나지 않겠다”는 룻의 믿음의 결단 속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결단을 따라
모압이라는 자신의 고향, 자신의 민족, 자신의 신들을 떠나, 베들레헴이라는 하나님의 땅, 여호와에게로 나아온 룻에게 하나님은 “여호와와 함께 하는 삶이 복이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이처럼 오늘도 우리는 분명히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시고 그 삶을 인도하시며 복주시는 분이십니다. 룻과 같이, 보아스와 그의 일꾼들과 같이,
여호와와 함께 하는 삶을 사는 복된 자들이 되는
만나교회성도들이 되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나아가 이러한 우리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하루를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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