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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2년 6월 18일 토요일 큐티본문설명(시편10:12-18)2022-06-1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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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13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15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16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인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 겸손한 자들,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들을 잊지 않고 귀를 기울이시고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고 찾는 이들을 위하여 세상에 속하여 그들을 위협하는 이들을 심판하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우리의 하나님께 오늘 우리의 삶을 맡기며 의지하며 그분의 일어나 일하심을 기대하는 하루의 삶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어제 살펴본 시편 101-11절의 말씀에서 다윗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참된 성도들이 경험하는 마치 하나님께서 멀리 있고 숨어계신 듯한 상황과 형편에 대하여 하나님께 아뢰며 탄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세상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이들 중에도 어떤 이들은 그 입술의 고백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배반하며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이 감찰하지 않는 것처럼 행하는 모습을 고발하였습니다.

 

오늘 살펴보는 시편 1012-18절은 그러한 고발에 이어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호소하며 간구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12). 이러한 호소와 간구를 드리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며 주는 감찰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13). 즉 다윗은 단지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어나시기를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일어나셔서 드러내시기를 간구합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들도 우리 자신의 것을 앞세우기 보다는 하나님의 명예를 앞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일을 행하시는 것보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신의 명예를 걸고 일하시는 것이 훨씬 더 확실하며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현실에 눈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의 눈을 고정시켜야 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현실의 어려움이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며 드러내는데 사용된다는 것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질 수 있는 영광들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실을 통해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하나님 자신이 일하시며 일어나시기를 기도합시다.

 

14절에서부터 분위기는 확신과 선언으로 바뀝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이미 보셨고 감찰하셨고그것에 따라서 갚으려 하신다고 확신합니다. 달리 말하면 주님께서는 다윗의 고발과 호소와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외로운 자는 주를 의지합니다”. “주님은 고아를 도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이 자기 자신을 외로운 자, 고아라고 칭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고자 하는 참된 성도들은 외로운 자들이며 고아와 같은 자들입니다. 참된 성도들을 둘러싼 세상의 사람들은 참된 성도들을 따돌리며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깁니다. 이러한 믿음의 삶에서 경험하는 외로움과 버림받음 같은 것들은 이미 우리 주님께서 경험하셨고 제자들에게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참된 성도들에게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참된 성도들의 시민권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기 떄문입니다. 이러한 외로움 중에 참된 성도로써 우리들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고아와 같은 우리들을 도우시는 분인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 땅에서 그러한 외로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그러한 외로움에 견디다 못해 세상을 따라가며 세상의 모습을 흉내내고자 하는 성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결코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삶과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참된 성도들의 삶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만나교회 성도들이 믿음의 삶을 살아가며 외롭고 고아와 같은 처지에 있을 때, 오히려 참된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며 주님을 더욱더 의지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는 분(14:18)임을 굳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합시다.

 

이렇게 자신의 명예를 지키며 고아와 같은 주님의 백성들을 도우시기 위해 일어나신 주님께서는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시고 그들이 악을 행하는 팔을 꺽으시며. 여호와께서 왕되신 주님의 땅에서 이방 나라들, 세상 사람들은 결코 함께 하지 못하며 멸망합니다(15-16). 결과적으로 이러한 주님의 행하심은 주께서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겸손한 자가 주님 앞에 그러한 소원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그들의 소원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믿음을 주님께서 그 마음에 준비시켰기 때문입니다. 즉 겸손한 자는 주님께서 그 마음에 준비시킨 그 믿음을 따라 주님앞에 그 소원을 아룁니다. 빌립보서 213,14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 앞에 아뢰는 기도와 소원은 나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나 소원성취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아뢰는 기도와 소원은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두신 소원을 따라 그것을 두고 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들이시고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셔서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그들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의 삶이 비록 세상에서 외로운 길을 걷는 것이지만,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두신 소원을 따라 살아가는 삶인 것을 기억하며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고아와 같은 우리들을 주님께서 결코 버리지 않으시며 우리와 함께 하셔서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실 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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