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8월 29일 월요일 큐티본문설명(출애굽기 5:12-23)

글보기
제목2022년 8월 29일 월요일 큐티본문설명(출애굽기 5:12-23)2022-08-31 00:26
작성자
첨부파일만나로고 원-1.png (15.6KB)

12 백성이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니 13 감독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이르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그 날의 일을 그 날에 마치라 하며 14 바로의 감독들이 자기들이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을 때리며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 15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이 가서 바로에게 호소하여 이르되 왕은 어찌하여 당신의 종들에게 이같이 하시나이까 16 당신의 종들에게 짚을 주지 아니 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벽돌을 만들라 하나이다 당신의 종들이 매를 맞사오니 이는 당신의 백성의 죄니이다 17 바로가 이르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 하는도다 18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벽돌은 너희가 수량대로 바칠지니라 19 기록하는 일을 맡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너희가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 함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20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21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23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비록 모세와 아론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경배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전해진 말씀을 통해 정작 그들의 삶에 더 큰 어려움이 찾아오자 모세와 아론을 믿지 못하며 그들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도 의심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입니다. 오늘 당신의 믿음의 삶은 어떠합니까?

 

지난 토요일 말씀에서 모세와 아론이 드디어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과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파라오는 여호와가 누구기에 내가 그 말을 들어야 하느냐 라고 반문하면서,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힘들고 어렵게 만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파라오의 조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과 모세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해진 고초와 어려움으로 하나님이 아닌 파라오에게 나아가 호소합니다. 우리 번역에 호소하다”(15)로 번역된 단어는 부르짖다라는 의미를 가진 짜아크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2 23절과 37,9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것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심해진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따라 하나님이 아닌 파라오에게 호소하고 부르짖습니다. 이어지는 20-21절의 말씀에 따르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라오에게 호소한 것은 어쩌면 하나님이 그들의 현실적인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파라오를 통해 해결해 주실 것을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모세와 아론은 하지 못했으나, 자신들이 호소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 듯 하며, 이러한 그들의 기대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파라오 앞에서 자신들의 고통과 어려움이 이집트 사람들의 허물”(16) 때문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 그들의 이집트에서의 삶의 형편을 더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였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파라오에 대한 그들의 호소의 말 속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집트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가게 하겠다는 내용이 전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것은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 땅에서 풍요롭고 평안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마음은 모세와 아론을 다시 만났을 때 그대로 드러납니다: “너희가 우리를 파라오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21). 즉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이집트에서의 삶의 형편이며 그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파라오와 그 신하들의 생각과 눈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을 위해 하나님조차도 동원합니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21).

오늘 본문은 더 큰 문제를 우리에게 드러냅니다. 그것은 바로 지도자인 모세의 모습입니다. 즉 모세조차도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에 휩쓸려 버립니다. 비록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에 반응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만, 모세가 하나님께 호소한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주는 어리석은 모습과 말들입니다: “내가 파라오에게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부터 파라오가 이 백성을 더욱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23). 문맥적으로 모세의 말은 고난은 더 심해지고, 그러한 고난에서 구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이 말 속에는 317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이집트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는 말씀의 절반만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로부터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구원하심을 말씀하셨지만, 모세의 말 속에는 고난에서의 구원만이 담겨 있습니다. 심지어 모세의 말 속에는 현실에서의 삶에 고난이 더 크진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 때문이라는 책임소재에 대한 암시도 들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모세의 모습은 오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보다, 현재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적 삶의 형편이 더욱 중요하며, 이를 위해 세상에 호소하며 세상의 눈치를 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실적 삶을 위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조차도 우리 마음대로 가져다가 붙이고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우리는 이 땅에서의 세상적 삶의 안정과 성공과 평안으로 바꾸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의 지도자들조차도 이러한 어리석음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의 절반만 전하는 경우도 있음을 봅니다. 오늘 당신의 믿음의 삶은 어떠합니까? 또한 오늘 우리의 믿음의 공동체와 지도자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출애굽기_512-23, #큐티, #독일,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비스바덴, #한인교회, #만나교회, #Exodus_5:12-23, QT, #Frankfurt, #Korean_Church, #koreanische_kirchengemeinde, #MannaChurch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