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 내 딸들아 되돌아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쫓았더라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모압에서 유대
땅으로 돌아오고자 하지만, 정작 그 걸음은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더구나 나오미는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고 말하며 더 이상 소망이 없음을 말합니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고난 중에 당신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제 본문에서 우리는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인한 흉년 속에서 엘리멜렉의
가족이 모압지방으로 이주를 하였고 모압여인들을 아들들의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그 역시도 불신앙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압으로 이주한 지 10년만에, 남편과 두 아들들을 잃고 “뒤에 남은” 나오미의 모습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한 불행한 상황에서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셔서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6)는 소식을 듣고 일어나 이스라엘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사실상 오늘 본문을 지배하는 단어는 “돌아오다”로 다섯 번이나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돌아옴은 하나님께로의 돌아옴이나 신앙적 돌아옴이 아니라, 인간적인 돌아옴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나오미의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의 회복하심에 대한 조금의 소망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모든 불행의 원인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모습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나오미의 불신앙적 돌아옴은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와 베들레헴에 들어온 직후 라는 시간과 공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구별되는 두 단계로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은 첫 단계로 모압을 출발하여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두 며느리를
대상으로 드러납니다. 우선 본문은 모압여인인 두 며느리들이 나오미와 함께 “있던 곳에서 나와 길을 갔다”(7)고 말합니다. 사실 이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두 며느리들인 오르바와 룻은 지금 자기 고향, 자기 친족을 떠나 아무런 소망과 목적이 없는 늙고 비어있고 죽을 자리를 찾아 가는
나오미를 따라 갑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모압여인인 오르바와 룻은 고향이며 가족들이 있는 모압에
머무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며 당시 상황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하는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하며, 심지어 그렇게 하더라도 아들들을 낳고 자라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11-13)는 등의 내용은 두 며느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기에 두 며느리가 나오미와 함께 모압을 떠나 이스라엘로 가려는 이 행동은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두 며느리가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로 가려는 구체적인
동기/이유/목적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10)라고 두 며느리들은 말할 뿐입니다. 여기에서 “돌아가겠다”라는 표현은 오르바와 룻이 모압이 고향인 것을 생각하면, 사실과 맞지 않는 표현인데, 이것은 오르바와 룻이 히브리어에 미숙하여 나오미가 8절에서 말하는 “돌아가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서 사용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돌아가라”고 말하는 구체적인 내용에서
나오미의 불신앙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나오미는 먼저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실상 두 며느리들에게 “그들의 백성과 그들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라”(15)고 말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다음으로 나오미는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8)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선대하였다 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오미는 자신의 모든 상황과 고통과 슬픔이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기 때문”(13)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나오미의 말에는 “너희는 나를 선대하였으나 여호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원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선대”로 번역된 말은 히브리어 헤세드로 자비, 은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치셨다”(13)는 말은 “비난하다 실패하게 하다”는 뜻으로 나오미는 자신의 인생을 마치 하나님께서 실패하게 만드신 것으로
말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받게 하시기를 원한다”(9)고 말하지만, 이것은 자신이 베들레헴으로 돌아간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조금의 소망과 위로도 기대하지 않음으로 드러냅니다. 즉 나오미는 여호와의 땅으로 되돌아가지만, 그 땅에서 여호와의 은혜와 위로를 조금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나오미의 불신앙은 내일 살치게 될 1장 15-22절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였고 내가 풍족하게 나갔으나 여호와께서 나를 비어서 돌아오게
하셨다”(20,21).
오늘 본문의 이러한 나오미의 모습 속에서 당신의 모습은 어떠한지 비추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또한 이런저런 현실적인 어려움과 고난 중에 살아갑니다. 그러한 삶 속에서 당신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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