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주변 민족들이 침략하여 흉년이 듭니다. 유다 베들레헴의 엘리멜렉은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가족을 데리고 모압으로 가서 살고, 그 아들들은 모양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죽고 나오미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저버린 하나님의 백성의 비참한 모습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은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흉년이 든 “그 땅”은 곧장 언급되는 “유다 베들레헴” 지역입니다. “베들레헴”은 “빵의 집”이란 의미로 그 지역이 곡창지역인 것을 드러냅니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빵의 집에 먹을 빵이 없었고 심지어 빵을 만들 재료인 밀과 밀가루조차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흉년이 든 것은 사사들이 다스리던 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사기를 통해 이러한 흉년의 원인을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하기 위해 일부 이방민족을 남겨두셨습니다(삿3:1-4)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대신 이방민족의 이방신들을 섬기고 그들과
혼인하였습니다(삿3:5-7). 그 결과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을 그들이 섬기는 이방민족에게 넘겨주셔서 이스라엘이
이방민족의 침략을 받고 다스림을 받게 하셨고 그 결과 이스라엘에게 흉년을 비롯한 어려움과 고통이 찾아왔습니다(cf. 레26; 신28). 즉 이방민족은 침략하여 다음해 파종해야 하는 씨앗까지도 다 빼앗아 갔기 때문에 그
다음해에 파종을 못하게 되면서 결국 흉년이 찾아옵니다. 오늘 룻기서에서 언급하는 흉년(룻1:1)은 바로 이러한 사사시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처럼 불신앙으로 인해 찾아온 흉년 속에 빵이 없는 빵의 집 베들레헴에서 엘리멜렉은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으로 “이주”합니다. 이러한 엘리멜렉의 반응과 행동은
사실상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앙적 반응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이 다시금 여호와를 찾고 돌아오면 회복시킬 것이라고 약속하였지만, 그 약속을 믿지 않고, 나아가 스스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엘리멜렉의 모습은 “여호와는 나의 왕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자신의 이름 “엘리멜렉”에 반대되는 모습이며 나아가
사실상 흉년을 가져온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불신앙의 모습의 끝은 사실상 “죽음”과 “불신앙의 반복”으로 드러납니다. 먼저 엘리멜렉이 죽었고,
이후 두 아들들은 모압 여인 중에서 아내들을
맞이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들의 사정에서 세상적으로는 지혜로운 모습인 듯 합니다. 왜냐하면 이방지역으로 이주한 상황에서 집안의 가장이 죽었기에 계속해서 그 땅에 머물며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현명하며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그 땅의 사람들과 혼인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병든”이라는 의미의 “말론”과 “훼손“이라는 의미의 “기룐”이라는 이름에서도 드러납니다. 생각해 보면, 어느 부모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러한 이름을 줄 수 있을까 싶습니다만, 이들의 이름 자체를 통해 말론과 기룐이 어린시절 흉년과 침략과 이주를 통해 육체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나오미와 두 아들들인 말론과 기룐은 이스라엘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영원히
모압땅에서 모압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생각해 보면, 이렇게 모압여인을 아내와 며느리로 맞아들임으로, 낯선 땅으로 이주한 이후 불행과 어려움을 딛고 그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고 즐거움을
기대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결국 신명기 23장 3절에서 암몬사람과 모압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명령을
직접적으로 거역한 것이라는 것으로 결국 불신앙적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낯선 땅에서 정착하여 희망을 품는 그 순간에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은 죽습니다. “즐거움”이라는 의미의 “나오미”라는 이름이 “괴로움”이라는 뜻의 “마라”(룻1:20)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모압으로 이주한 지 십년만에 나오미는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습니다(5). 나오미 스스로 말하듯, 아무런 소망과 희망이 없는 “비어있고 죽은 상태”입니다(1:11,12,21).
오늘 본문에서 보이는 한 가족의 모습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저버린 하나님의 백성의
비참한 모습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떠합니까?
#룻기_1장 1-5절, #만나교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비스바덴, #한인교회, #개혁교회, #Frankfurt, #Korean_Church,
#koreanische_kirchengemeinde, #MannaChur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