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12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이방여인 룻은 “당신의 옷자락(날개)을 펴 덮으소서”(cf.
2:12; 겔16:8)라고 말하며 보아스에게 기업무를 자의 의무를 행하도록 요청합니다. 이어지는 보아스의 응답에서 처럼, 이러한 룻과 보아스의 모습은 세상이 아닌 여호와의 말씀을 의지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합시다..
지난 토요일 본문에서 우리는 모압여인 룻을 위하여 안식할 곳을 찾아 복되게 하고자
한 나오미의 모습(4:1)은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모압 여인 룻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온전한 상 주시기를 바라는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2:12).
오늘 본문은 그러한 나오미의 의도에 따라 모압여인 룻이 밤중에 타작마당에 누워 자는
보아스를 찾아갔을 때의 일을 알려줍니다.
긴 시간 끝에 드디어 여호와께서 주신 양식(1:6)을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보아스는 누워 잠이 듭니다. 룻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뜻을 따라, 보아스가 덮고 자는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에 누웠고, 잠을 자던 보아스는 밤중에
깜짝 놀라 일어나 자신의 발치를 살피고 한 여인이 있는 것을 보고 “네가 누구냐”라고 질문합니다. 이러한 보아스의 질문에,
모압여인 룻은 “나는 당신의 여종 룻입니다”라고 답하면서,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9)라고 응답합니다.
이러한 룻의 말에서 우선 “당신의 여종(아마, 노예, 시녀)”라고 스스로를 가리키는 것이 눈에 띕니다. 앞서 룻은 보아스에게 답하면서
스스로를 “이방여인”이라고 말하였고(2:10),
“나는 당신의 하녀(노예, 시녀) 중의 하나와 같이 못하다”(2:13, 쉬프하)고 말했던 모압여인 룻이 이제는
보아스를 향해 “당신의 여종”이라고 스스로를 부릅니다.
우리 번역에 “여종, 시녀, 하녀”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들(아마, 쉬프하)는 여자노예나 여종, 여인들이 시집올 때 함께 데리고 오는 몸종, 나아가 아내나 아내가 될 여인이
자신의 남편에세 자기자신을 칭할 때 등 다양하게 사용된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핵심은
룻이 “당신의” 여종이라고 스스로를 보아스에게 속하는 것을 소망하는 마음을 드러내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앞서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 같지 않은 이방여인에 불과하였지만, 이제는 보아스의 집안에 속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1:16)이라는 룻의 신앙적
결단이 모압 여인 룻을 같은 이스라엘사람으로 여기는 보아스의 호의(2:14)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행되며 열매를 맺는 첫 단추입니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당신의 옷자락을 펴 덮으소서”라는 말입니다. 우리 번역에 “옷자락”으로 번역된 “카나프”라는 말은 2장 12절에서 “그의 날개 아래”로 번역된 것과 동일한 단어입니다(아래 참고). 즉 룻이 “당신의 옷자락으로 당신의 여종을 덮으로서”라고 말하는 것은 2장 12절에서 보아스가 룻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한다”라고 축복한 것을 그대로 받아, 그러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보아스 당신이 나에게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룻이 이렇게 보아스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행해 줄 실행자로 여기고 호소하는 것은 보아스가
“기업무를 자”(3:9; 2:20; 레25:25-31; 신25:5-10, 고엘)이기 때문입니다. 즉 룻은 세상적인 관점이나 인정, 보아스의 성품이나 혹은 심지어 자신의 젊음에 호소하지 않고, “보호”를 의미하는 “하나님의 날개”와 “회복”을 의미하는 “기업무를 자”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이 “기업무르는 일”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룻 4:6). 그러나 보아스는 이러한 룻의 호소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임을 인정하면서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한다”(3:10). 뿐만 아니라, 그러한 룻의 호소를 받아들여 “기업무를 자”로서의 책임을 다 이행하겠다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13).
이러한 룻과 보아스의 모습은 세상이 아닌 여호와의 말씀을 의지하며 그 말씀에 호소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합시다.
참고
“날개”로 번역되는 카나프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약 110회 나오는데, 그 중에서 10회만 문자적으로 새의 날개를 의미하고, 또한 6회 정도 “바람은 날개를 가졌다”(삼하 22:11)와 같이 속도, 신속함 등 비유할 때 사용되고,
나머지는 대부분 비유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혹은 심판과 관련되어 언급됩니다. 우선적으로 이 단어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미하는데, 여호와께서 독수리 날개로 자기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업어인도하신 것(출19:4; 신32:11),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자신의 날개 아래 보호하시는 것(시17:8; 36:7; 룻2:12), 혹은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그의 날개로 치료하는 것(말4:2 우리 번역은 치료하는 광선), 뿐만 아니라 언약궤 위를 덮는 속죄소(덮개의 역할) 위에 만들어 놓은 그룹(스랍, 천사)의 날개(출 25:20-22; 사6:2) 등으로 비유됩니다. 특히 언약궤를 덮는 속죄소 위에 그룹(스랍, 천사)의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도록 하라고 명하면서,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신25:22)고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그러나 반면 이 단어는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마치 독수리가 토끼를 덮치던 하나님께서 자신의 날개를 펴서 심판을 행하는 것(렘48:40; 49:22; 사 8:8; 겔17:3,7)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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