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나누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생각하며 말씀에 삶의 뿌리를 놓고 살아가는 사람은
의인의 길을 걷는 사람이며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삶의 길을 의인의 길로
인정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말씀과 함께 하는 의인의 길을 걷는 삶을 살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행복한 사람이기를 기도합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편의 복은 행복을 말합니다.
행복은 여러 가지를 통해서 얻거나 누리거나 가질
수 있습니다. 행복은 물질적인 소유, 소원성취와 관계가 어느 정도 있지만, 그러나 결코 물질적인 소유나
소원성취가 곧장 행복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수십억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그후에 어떻게
그 삶이 행복과는 멀어지게 되는지 많은 예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행복은 이러한
물질적인 소유나 소원성취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1편 1,2절은 시라는 것을 고려하면 원래는 이렇습니다:
얼마나 행복한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그래서 시편 1편에서 강조점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으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질문이 나옵니다: 우리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으면 행복한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면
행복한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면 행복한가? 라는 질문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그 반대의 경우를 경험합니다. 세상 삶에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으면, 오히려 불편과 억울함이 찾아옵니다. 이런 저런 일들 속에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립니다. 자기 피알의 시대인 오늘날 스스로를 높이고 다른 사람들을 누르지 않으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보다 세상 지식과 커리어을
하나라도 더 쌓아야만 남들보다 더 돈 잘 버는 직장, 더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적인 상황과는 반대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행복합니까?
오늘 본문은 더 나아갑니다.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가 행하는 일들”은 위에서 말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형통하다는 말은 적절하다 더 풍성해지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3절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일들이 더욱 적절해지고 더 많아지고 더 풍성해질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현실적인 삶에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일들”이 더 적절해지고 더 많아지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요? 우리의 경험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더욱더 정직하게 살면, 더욱더 겸손해지면, 더욱더 의로운 삶을 살면, 더욱더 말씀을 따라 살면 살수록, 우리의 현실적인 삶은 어려워집니다. 겨우 현상유지정도 하면 잘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까?
6절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 즉 우리의 삶을, 우리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며 살아가는 이런 삶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신다 는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인생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알아주는 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습니다. 심리학이나 정치학 용어로 이것을 인정욕구라고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해
확신이 필요하며 이것은 자신이 “가치있다”라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 때 채워집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가치있다 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 여러 가지를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라는 사람이 이와 관련하여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 있습니다.
무인도에 홀로 살게 된 로빈슨 크루소는 어느 날 바닷가를 거닐다가 파도에 휩쓸려 바닷가로
떠내려온 여자를 발견하고 급히 인공호흡을 하기 시작했고, 다행스럽게도 잠시 후 그녀는
마침내 눈을 뜹니다. “당신이 내 목숨을 구해주셨군요.” 눈을 뜬 그녀는 감사의 말을 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는데, 당대의 미인이자 영화계의 대스타인 여배우였습니다. 이름을 헬렌이라고 합니다. 이후 꿈 같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무인도지만 따뜻하고 과일들이
풍부하여 살기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어느덧 헬렌과 로빈슨은 깊이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헬렌은 로빈슨이 몹시 침울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녀는 “이토록 평화롭고 모든 것이 풍족한 섬에서 도대체 우울할 일이 뭐가 있느냐”면서 “내가 도와줄 일일 없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로빈슨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당신에게 한가지 부탁할
일이 있소.” “내 셔츠와 바지를 입어 줄 수 있소?” 그녀는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 했지만, 흔쾌히 들어주었습니다. 로빈슨이 또 말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내 코트를 입고 얼굴에 수염을 그리고 바닷가로 내려가 섬을 한 바퀴 돌아주지 않겠소?” 그녀는 로빈슨이 시키는 대로 얼굴에 수염까지 그리고 섬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로빈슨은 그녀와 반대방향으로 섬을 돌았습니다. 이윽고 15분후 두 사람은 섬의 반대편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 순간 로빈슨은 그녀를 향해 달려가 어깨를 붙잡고 소리쳤습니다. “이봐요, 아저씨, 내가 지금 어떤 여자와 함께 살고 있는지 알고 있소? 그녀가 누구인지 말해 주어도 당신은 절대로 믿지 못할 거요!”
이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가 시사하듯 사람은 누구나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먹을 것이 풍부하고 에덴동산 같은 안락한 곳에 별걱정없이 산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원합니다. 심지어 오늘 시편 1편 본문이 말하는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의 삶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인 시편 1편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으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알아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알아주는 삶을 사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정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창조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보시면서 “정말 좋구나”라고 말씀하시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우리들의 참된 행복입니다. 우리 모두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하여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삶을 살아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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