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하는지라 아이의 어머니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따라가니라 게하시아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엘리사는 사환 게하시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주어 곧장 달려가
아이의 얼굴에 놓으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수넴여인은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30)고 자신의 마음을 토로합니다. 이
말은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엘리사가 엘리야를 향해 외쳤던 믿음의 말과 동일합니다(2:2,4,6). 이를
통해 엘리사는 여인의 뒤를 따라 길을 나섭니다. 결과적으로 지팡이가 아니라, 엘리사가 기도할 때 아이는 눈을 뜨고 수넴여인의 괴로움이 해결됩니다(히11:35). 우리의 믿음의 고백과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제 가까이 온 수넴여인은 엘리사에게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수넴여인은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자신이 요구(기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만 말합니다. 즉 아들을 주신 것은 “내
주”(엘리사/여호와) 자신임을
지적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을 요청합니다. 달리 말하면, 이
수넴여인은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나(20), 여전히 소망을 품고 하나님께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서 아이가 죽은 후, 자신의 남편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급히 엘리사를 찾아오는 이 수넴여인의 모습에서도 드러납니다(이러한 여인의 행동은 유대인들이 사람이
죽으면 하루나 이틀 안에 매장하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엘리사는 아직 상황의 심각성과 긴박성을 파악하지
못한 듯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숨기시고 알려주지 않았고(27)
또한 수넴여인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엘리사는 자신의 지팡이를
자기 제자 게하시에게 주어 아이 얼굴에 놓으라고 지시합니다. 그러나 수넴여인이 게하시를 따라가지 않고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리다”(cf. 왕하 2:2)라는 말로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자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뒤를
따라” 갑니다. 이러한 수넴여인의 모습은 구약에서 보기 드문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창세기에서 오늘 본문까지에서 실제적으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것은 열왕기상 17장 17-24절에서 엘리야에 의해 살아난 사르밧 과부의 아들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사르밧 과부의 아들의 경우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행하는 것은 엘리야이지만, 오늘 본문에서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이 수넴여인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장이라고 칭해지는 히브리서 11장 3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기도 하였다”.
그 사이에 엘리사의 보냄을 받았던 게하시가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아무 일도 없자 돌아와 엘리사에게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다”고 알립니다. 이제 드디어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는 죽었고
수넴여인이 자신에게 제공한 방에 있던 자신의 침상에 눕혀놓았습니다(32, 21;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침상, 지팡이-에 그 능력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문을
닫고 죽은 아이와 엘리사 두 사람만 여호와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아이 위로 엎드려 얼굴과
손을 맞대고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결과적으로 침상이나 지팡이가 아니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할 때 아이는 눈을 뜨고 수넴여인의 괴로움이 해결됩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당시의 풍습과 관습,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한 수넴여인과 그러한 수넴여인에게 반응하여 행동하는 엘리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지팡이나 침상으로 상징되는 당시의 생각들과 가치관이 아니라, 수넴여인의 믿음과 엘리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의 이러한 일을 마치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언제든지 반복할 수 있는 실험과 증명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오늘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적인 가치관과 사고방식, 풍습과 관습을 넘어서,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따라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히브리서 11장은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11:39-40). “약속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약속된 것”(약속이
성취된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이미 받았음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약속된 것은 바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분”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죄를 용서받았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여 참되신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살며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은혜로 받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게 되었음을 기억하며 감사합시다(히 12장).
#열왕기하_4장28_37절, #엘리사, #수넴여인, #살아난_아들, #신실한_하나님, #만나교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인교회, #장로교, #고신, #Frankfurt, #Korean_Church,
#koreanische_kirchengemeinde, #MannaChur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