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12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13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 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15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17 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19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은 선지자들과 또한 도비야와 혼인관계를 맺어 권력과 부를
차지한 유력자들이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며 또한 약하게 하며 악한 말로 비방하여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자 합니다. 비록 유다백성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세상을 따라 살며 세상에서의 삶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로, 그 이름만 유다백성일뿐 이방민족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어제 본문에 이어서 오늘 본문도 성벽재건을 하는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아온
어려움가 위기들을 계속해서 알려줍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성벽재건을
방해하는 산발랏과 도비야 등과 한편이 되어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묘한 말로 두렵게 하고 비방한 이스라엘 백성들 중의 몇몇 사람들에 대하여
말합니다.
먼저 스마야는 “예언”(12)이라는 말로 볼 때, 제사장 혹은 선지자로 여겨지는데, 그가 두문불출하자 느헤미야가
직접 방문할 정도로 당시 예루살렘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스마야는 자신을 찾아온 느헤미야에게 “성전의 외소”로 도피할 것을 제안하면서 왜냐하면 그들이 밤중에 와서 느헤미야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성전의 “외소”는 지성소를 “내소”라고 표현할 때,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의 부분인 앞부분을 표현하는 말로 “성소”라고도 하는 곳입니다(왕상 6:14-38). 즉 이곳에는 등대와 진설병상과 향단이 놓여 있는데 오직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 혹은 선지자로 여겨지는 스마야는 제사장이 아니었던 느헤미야에게
그곳으로 도망하고 심지어 성전문을 닫도록 제안합니다. 그렇기에 느헤미야는 제사장이
아닌 자신이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곳임을 알고 그러한 스마야의 제안을 거절합니다(11). 이후에 느헤미야는 스마야의 이러한 제안과 “예언”이 도비야와 산발랏에게서 뇌물을 받고 한 것으로,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여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로 비방하기 위함”(12, 13)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아마도 느헤미야가 성전의 외소로 피해서 도망했다면, 당연히 느헤미야는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로 인해 비방을 받았을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는 느헤미야의 모든 말들과 행도들은 거짓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고 결국 산발랏과 도비야의 비난처럼
느헤미야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성벽을 재건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을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단지 스마야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여선지자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도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성벽이 52일만에 완성되었고 또한 대적들과 주변의 이방민족들조차도 이 역사가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알고 두려워하고 낙담하는 중에 있게 됩니다. 그것은 유다의 귀족들이 도비야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것입니다. 단지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느헤미야에게 말하고 또 느헤미야의 말을 도비야에게 전하는데, 그 목적은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아들과 딸을 서로 혼인시켜 인척관계를 형성하여 서로 동맹하였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유다의 몇몇 귀족들이 도비야와 혼인관계를 맺고 동행하여 자신들의 개인적인 목적과 유익을 위해 이렇게 중재하려고 나섰고 결국 그것은
도비야의 목적을 도와주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비록 그들이 유다백성이었지만, 재물과 관계를 위하여 세상을 따라 살며 세상에서의 삶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로, 그 이름만 유다백성일뿐 이방민족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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